동은 삼척 천은사 주지



얼마 전에 봄눈이 많이 왔다. 오랜 가뭄을 해갈할 고마운 눈이었다. 마당에 수북하게 쌓인 눈도 봄눈이라 며칠 만에 다 녹았다. 오늘은 신도님들과 명상길 산책을 하러 갔다. 벌써 나물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새싹을 본 신도님들은 곧 봄나물 뜯으러 가야겠다며 얘기꽃을 피웠다. 여기 나물은 주로 우산나물, 취나물, 다래 순, 고추나무 순, 그리고 화살나무에서 나는 홑잎 등이다. 겨우내 모진 칼바람과 눈보라를 견디고 내민 첫 순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솜털이 보송하고 파릇파릇한 잎을 꺾을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다른 생명을 얻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구입시 세금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스님들이 발우공양을 할 때 외우는 게송이다. 나는 식당에 갔을 때 먹지 않을 음식은 미리 반납한다. 어차피 먹지도 못할 거면서 한두 번 젓가락질하고 물리기엔 너무 아깝고 그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자기들 새희망홀씨 대환 의 생명을 바쳐 다른 생명을 살리려고 보살행을 했는데 그 공양을 받아주지 않고 버린다면 생명을 두 번 죽이는 셈이다. 모든 생명들은 서로를 위해 죽어가고 그 희생으로 살아진다. 며칠 전 지인의 초대를 받아 시내 식당에 갔었다. 한정식 집인데 봄을 맞아 온갖 나물들이 푸짐하게 나왔다. 지인은 스님께 공양 대접을 하느라 식당과 메뉴를 고르신 듯했다. “이야! 신한은행 대출이자계산기 상다리가 부러지겠는데요”라고 하며 감사를 표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대부분의 반찬들이 젓가락 몇 번 못 대어보고 공양을 마쳤기 때문이다. 먹다 남은 음식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갈 것이다. 이 많은 반찬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밥상에 올랐겠는가. 그 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네 밥상은 반찬이 너무 많다. 산채정식이나 유명 한정식 집에 가 스마트폰 개통 면 수십 가지 반찬이 나온다. 심지어 한 상에 다 놓질 못해 이층으로 포개놓는 곳도 있다. 그런데 이 반찬들은 거의 반도 먹지 못하고 버려진다. 음식물 쓰레기가 전체 생활 쓰레기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적당량을 준비하는 상차림, 남은음식 포장하기 등 외식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 메뉴도 좀 더 구체화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혈압에 좋은 식단, 당뇨에 단위농협 햇살론 좋은 식단, 간에 좋은 식단, 장에 좋은 식단, 원기 회복에 좋은 식단 등등. 이렇게 하면 반찬 가짓수도 줄고 내게 필요한 음식을 약으로 먹게 되어 버리는 음식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월정사 행자 시절, 뭣도 모르고 설거지 한 물을 버렸다가 하수구에 있는 밥알을 건져먹은 적이 있다. 노스님께서 야단치며 하는 말씀이, 밥알이 다 삭을 때까지 제석신이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이었다. 쌀 한 톨에 들어 있는 농부의 피와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라고 했으니, 제석신이 밥알을 버린 사람의 죄를 대신 받고 있는 셈이다. 다른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모든 만물은 다른 생명들을 위해 기꺼이 밥이 된다. 밥상은 생명들이 마지막 공양 올린 거룩한 곳이다. 살생? 따로 있지 않다. 음식을 버리는 것이 살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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